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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대조영의 발해 건국(713년)과 멸망(926) 고구려 대조영의 발해 건국(713년)과 멸망(926) 고구려의 멸망 후, 유민들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당나라에 저항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나라는 보장왕을 요동 도독에 임명하고 유민들을 중국 땅 곳곳으로 강제 이주시킨다. 이때 요서 지방의 영주로 이주했었던 장군 출신의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이끌고 영주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이동해 간다. 추격해 오는 당나라 군대를 천문령 싸움에서 크게 승리한뒤, 대조영은 698년에 길림성 돈화현 부근의 동모산 기슭에 국호를 '진'으로 나라를 세우게 된다.그러다가 713년에 국호를 '발해'로 바꾸게 된다. 2대 무왕은 영토 확장에 힘을 쏟았고, 8세기 후반인 3대 문왕 때 크게 발전하게 된다. 문왕은 중앙에 3성 6부제를 실시하여 지배 체제를 정비하고, 수.. 2022. 8. 31.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고구려 612년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고구려 612년 6세기 말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의 문제는 나라의 정세가 점차 안정되면서 고구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598년에 최초로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려 했지만 때마침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철군을 하게 된다. 이후 수나라의 황제가 된 양제는 612년에 113만의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재 침공에 나서게 되는데,, 육군은 요동성을 향하고 내호아의 수군은 바다를 건너 평양성으로 곧장 쳐들어 오려 하였다. 하지만 고구려는 결코 만만치 않은 방어를 펼쳤고 수나라의 수군은 대패하였으며, 육군은 요동성을 수차례 공격하였지만 결국 함락시키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양제는 우중문과 우문술에게 30만의 군사로 .. 2022. 8. 25.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유목민족 게르만 민족 대이동의 역사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유목민족 게르만 민족 대이동의 역사 백색 인종으로 키가 크고, 금발에 푸른눈이 특징인 게르만족은 원래 발트해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연안 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민족이었다. 그들은 농경 생활을 하게 되면서 남쪽은 점차 내려와 1세기 경에는 라인강과 다뉴브 강 유역까지 이르게 된다. 이후 게르만족은 북게르만(노르만인, 덴마크인 등), 서게르만(앵글인, 색슨인, 프랑크인 등), 동게르만(동고트인, 서고트인, 발달인 등)으로 나눠지게 된다. 이후 4세기 말에 아시아에서 이동해 온 훈족이 흑해 지역에 살고 있던 동고트족을 공격해 쫒아내고,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은 로마 영내로 이동해 간다, 즉, 이때가 375년부터 200년간에 걸쳐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으며, 이들은 유럽 각지에서 게르만 왕.. 2022. 8. 24.
포에니전쟁, 로마와 카르타고의 치열한 전투의 시작 포에니전쟁, 로마와 카르타고의 치열한 전투의 시작 기원전 3세기 중역에 시작해 120년 동안 지중해의 바다를 지배하여 군사, 통상, 항해 따위에 관하여 해상에서 가지는 권력을 놓고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인 3차 전쟁을 #포에니전쟁 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로마는 지중해로 진출을 꾀했으며, 시칠리아를 둘러싸고 카르타고와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로인해 기원전 264년에 시작된 제1차 포에니 전쟁을 로마의 승리하게 된다. 로마는 경제력과 해군력이 카르타고에 미치지 못했지만, 강력하게 결속되어 있던 시민군이 용병과 피정복민으로 편성된 카르타고군보다 강했던 것이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카르타고의 복수전으로 기원전 218년에 일어나게 된다.카르타고의 명장인 한니발은 험악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 2022.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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