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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역사 링크17

백년전쟁의 성격과 원인 영국과 프랑스의 다툼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해 노르만 왕조를 연 뒤부터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길고 긴 분쟁을 이어가게 되는데, 왕위 계승권을 비롯해 영국의 왕이 프랑스 내에 영토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었던 이유가 큰 원인이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의 성격과 시작 1328년, 프랑스의 왕으로 필리프 6세가 즉위하고, 이에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나선다. 하지만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에드워드 3세 소유의 땅인 기예(가스코뉴)를 몰수해 버렸는데, 그러자 에드워드 3세는 1337년에 프랑스에게 선전 포고를 하면서 프랑스의 본토로 진격해 가고, 이것이 백년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백년전쟁은 영국과 프랑스가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 모직물 공업 중심지인 프랑드를 지.. 2022. 9. 26.
코리아의 유래 Korea 라는 영어 명이 생긴 이유 The Republic of Korea -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정식 영어 명칭이다. 여기서 Republic은 (민주)공화제 국가의 뜻을 지니고 있는 일반 명사이다, 때문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부르는 고유 명사는 코리아(Korea)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영어명은 Korea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Korea라는 영단어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것임은 아는 사람도 있고, 아직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해서 오늘은 코리아의 유래에 대해서 가볍게 알아보도록 하자. 코리아의 유래 [ The Republic of Korea ] 결론 부터 설명하자면 Korea라는 국명이 처음 세계로 알려진 것은 바로 고려 시대이다. 고려는 외국과의 무역이 굉장히 활발한 .. 2022. 9. 24.
고려시대 만적의 난, 노비들의 반란 고려시대 만적의 난, 노비들의 반란 무신 정권이 들어선 이후의 고려, 당시의 신분 제도에는 커다란 변화와 혼란이 발생한다.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이 충돌하는가 하면, 천민 출신의 이의민이 최고 권력자가 되는 등 하층민도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벼슬에 오르는 일이 많이 생기고 있었다. 이처럼 고려 중기에는 문신 중심의 지배 체제가 무너지면서 사회의 모순이 드러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198년, 최충현의 사노비인 만적은 개경 북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다른 노비들을 죽인 후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궁궐로 몰려가 관노와 내시 등을 끌어들여 정권을 잡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거사일에 몇 백 명만이 모이자 연기를 하는데, 이때 율학 박사 한충유의 종 순정이 거사 계획을 상전에게 빌고 하여 만적의 꿈은 수포로 돌.. 2022. 9. 9.
고구려 대조영의 발해 건국(713년)과 멸망(926) 고구려 대조영의 발해 건국(713년)과 멸망(926) 고구려의 멸망 후, 유민들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당나라에 저항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나라는 보장왕을 요동 도독에 임명하고 유민들을 중국 땅 곳곳으로 강제 이주시킨다. 이때 요서 지방의 영주로 이주했었던 장군 출신의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이끌고 영주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이동해 간다. 추격해 오는 당나라 군대를 천문령 싸움에서 크게 승리한뒤, 대조영은 698년에 길림성 돈화현 부근의 동모산 기슭에 국호를 '진'으로 나라를 세우게 된다.그러다가 713년에 국호를 '발해'로 바꾸게 된다. 2대 무왕은 영토 확장에 힘을 쏟았고, 8세기 후반인 3대 문왕 때 크게 발전하게 된다. 문왕은 중앙에 3성 6부제를 실시하여 지배 체제를 정비하고, 수..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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