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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소피 제르맹(1776~1831) 편견을 극복한 여성 천재 수학자 생애와 업적

by Post_R 2022. 10. 5.

여성의 신분으로 현대 수리 물리학의 천재로 기록되어 있는 프랑스인 마리 소피 제르맹(Marie-Sophie Germain), 그녀가 살았던 19세기에는 여성의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어려운 시기였는데요, 하지만 소피 제르맹은 이런 편견을 부쉬고 놀라운 업적을 쌓은 수학자라서 역사에 당당히 기록되어 있는 여성 수학자입니다.

 

마리 소피 제르맹(1776~1831) 편견을 극복한 여성 천재 수학자 생애와 업적
마리 소피 제르맹(1776~1831) 편견을 극복한 여성 천재 수학자 생애와 업적

마리 소피 제르맹의 학창 시절 수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다

1801년 그녀가 25세가 되던 해에는 수학의 황제로 불리던 독일의 대수학자 '가우스'는 [정수론 연구(Dispositions of Arithmertics)]를 발표했었는데요, 마리 소피 제르맹은 이 책을 통해 정수론을 배우고 연구하였으며, 본인의 연구 내용을 가우스에게 보내게 됩니다. 가우스와의 서신 왕래는 그녀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가장 큰 업적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유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알려진 공식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 내용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19세기에 정수론을 하는 수학자들로 하여금 도저히 풀리지 않는 난해한 문제로 손꼽히고 있었는데요,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페르마는 어느 날 디오판토스의 "아리스 메티 카"의 여백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죠,

'xn+yn=zn : n이 3 이상의 정수일 때, 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해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이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 옮기지는 않겠다.' 이것은 몇백 년 동안 수학자들을 힘들게 하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페ㅔ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탄생한 지 100년 만에 천재 수학자인 오일러는 허수를 이용해 m=3일 때와 n=4일 때를 증명하였던 겁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정수를 일일이 모두 증명할 수는 없었고, 모든 자연수는 소수의 곱셈으로 이루어졌는데, 즉, 소수에 대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소수만 증명하면 된다고 해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만만해진 것은 아닌 것이 소수의 개수는 무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수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것을 마리 소피 제르맹이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수학자들은 큰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요 마리 소피 제르맹은 p가 소수일 때, 2p+1 역시 소수가 되는 소수들에 한하여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옳다는 것을 밝혀 내면서 자산의 재능을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가우스는 마리 소피 제르맹의 연구 결과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답신을 보냈지만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죠, 가우스가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는데요, 1807년 가우스의 고향인 브라운 슈바이크에 나폴레옹이 진주하게 되자, 마리 소피 제르맹은 아버지의 친구인 지휘관에게 편지를 보내 가우스의 신변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본인을 배려해 주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가우스는 지휘관에게 소피 제르맹이라는 사람이 부탁을 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죠, 물론 가우스는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고 이듬해 봄 마리 소피 제르맹은 가우스에게 본면으로 편지를 보내 자신이 여자이며, 르 블랑이라는 가명으로 활동을 했다고 밝혔던 것입니다. 이후 마리 소피 제르맹는 가우스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으며, 가우스와 학문적 친구로서 더욱 친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던 겁니다.

 

10여 년의 끈질긴 연구 끝에 수학자로서의 인정을 받게 된다

1808년 마리 소피 제르맹은 또 다른 난제에 도전을 하게 되는데요, 독일의 물리학자 클라드니가 진동하는 유리판 위의 모래들이 특정한 마디를 중심으로 대칭 무늬를 이룬다는 실험을 나폴레옹에게 시연하였고, 나폴레옹은 이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것을 과학자들에게 공모를 하였습니다. 이 당시 마리 소피 제르맹은 탄성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뒤듲게 이 콘테스트에 참가하게 됩니다. 라그랑주 교수가 수학적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풀기 힘들다고 했기 때문에 그녀는 새로운 통창을 제시했지만 새로운 가설을 끌어내지 못해 수상은 하지 못하게 됩니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라그랑주 교수는 그녀의 계산에서 오류를 바로잡고 새로운 방정식을 만들어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였지만 그녀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그녀는 세 번째 도전한 콘테스트에ㅔ서 결국 성공을 하는데,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는 마리 소피 제르맹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자임을 입증하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심사위원회는 '여성에게 상을 줄 수 없다'라는 이유로 논쟁을 벌이게 되지만 그 묹를 해결한 사람이 그녀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국 수상자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마리 소피 제르맹은 자신의 연구를 보충해 1825년 프랑스의 위원회에 제출하였지만, 이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게 됩니다. 그녀의 연구는 1880년에 이르러서야 다른 연구자에 의해 출판되었으며 마리 소피 제르맹의 금속체의 탄성에 대한 연구는 건축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지금까지도 폭넓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마리 소피 제르맹의 업적

1. 정수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n이 100보다 작은 경우에 성립함을 증명하였습니다.

2. 응용수학/이론 물리학

금속체의 탄성에 관련된 연구로 섬세한 분말을 탄성체 표면에 분사할 때 일어나는 표면의 진동에 대한 연구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으며, 바이올린 현과 같은 진동현상의 수학적 설명을 해냈습니다.

3. 제르맹 소수

소수는 1을 제외하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자연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소수를 작은 수부터 차례로 나열하게 되면 '2, 3, 5, 7, 11, 13, 17, 19, 23, 29....'이며, 이 소수 중 2를 곱해 1을 더하면 소수가 되는 것을 특별히 '소피 제르맹 소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835년에 마리 소피 제르맹은 이런 소수들에 대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참임을 증명하였으며, 곧바로 르장드르가 k=4, 8, 10, 14, 16일 경우에 kp+1이 소수인 홀수인 소수 p에 대해 성립함을 보임으로써 일반화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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